2019. 9. 20. 12:54ㆍ미스터리 & 공포
1991년 3월 26일. 지방선거로 인해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그날, 6명의 아이들이 인근에 있는 와룡산으로 향한다.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던 6명은(‘우철원’(13세), ‘조호연’(12세), ‘김영규’(11세), ‘박찬인‘(10세), ’김태룡‘(10세), ’김종식‘(10세)) 도롱뇽 알을 줍겠다며 장비를 챙기고 길을 나섰다
잠시 집에 들러 아침만 간단하게 먹고 온다는 ‘김태룡’을 뒤로하고 나머지 5명은 와룡산으로 향하였고 뒤늦게 쫓아온 ‘김태룡’은 와룡산 입구에서도 그들이 보이지 않자 홀로 집으로 돌아온다.
5명의 아이들이 와룡산으로 향할 때 같은 반 친구 2명을 만났고 그들에게 도롱뇽 알을 주으러 간다며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고 한다. 그 시간이 12시였다.
친구들과 헤어진 후 와룡산으로 들어간 5명의 아이들은 저녁무렵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들을 찾던 부모들은 결국 저녁 8시가 다 되어서 실종 신고를 한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가정불화로 인한 가출이라고 단정지어 수사를 시작했고 이로 인해 초기 수사가 미흡하여 아이들의 행적을 찾는데 많은 인력을 동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행방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고 언론 보도에 의해 사건이 알려지자 ‘노태우’ 대통령 특별지시로 많은 인력이 충원되어 와룡산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행했던 과자나 비디오등에도 아이들을 찾는다는 문구가 들어갔고 가끔 아이들의 집에 자신이 유괴하였으니 돈을 달라는 협박성 전화가 왔지만 모두 장난전화로 밝혀졌다.
1992년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아이들을 어찌한 것이 아니냐는 헛소문이 돌았고 1996년에는 ‘김종식‘군의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집에 묻었다는 프로파일러 ’김가원‘의 주장도 나왔다.
‘김가원’의 주장으로 언론의 관심이 ‘김종식’군의 아버지에게 쏠렸고 사실확인을 한다며 그의 집 곳곳을 파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이일로 인해 ‘김가원’은 재직 중인 카이스트에서 해고되었다.
아이들의 흔적은 결국 찾을 수 없었고 11년뒤인 2002년 9월 26일, 와룡산에서 도토리를 줍던 한 시민이 산 중턱에서 5명의 아이 유골을 발견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보존은 커녕 땅을 파헤쳐서 현장을 훼손시켰고 정확한 감식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아이들이 조난을 당한 후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와룡산은 높은 산도 아니고 저녁이 되면 마을 불빛이 보일정도로 산세가 험준하지 않아서 조난을 당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영규’의 옷끝자락은 찢겨있었고 단추가 뜯어진 점, ‘김종식’의 왼팔 골절과 두개골 골절이 인위적이라는 점, ‘우철원’의 두 개골에 찍힌 좌상흔이 25곳이 된다는 점으로 타살되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만약에 누군가의 타살이라면 범인은 1인이 아닌 2인 이상일 것이라는 전문가의 분석이 나왔고 인근 부대의 사격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주장도 나왔으나 그날은 휴일이었고 사격소리도 안났기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발견되었을 당시 아이들의 옷은 서로 묶인 상태로 얼굴까지 덮여 있었는데 옷을 묶은 매듭법이 전문가의 매듭법이라 타살의 의혹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팀은 아이들의 죽음에 관하여 여러방면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었고 범인이 있다면 2인 이상일 것이라는 분석과는 달리 1명의 범인이 순차적으로 아이들을 죽였을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다뤘다.
하지만 끝내 아이들의 사망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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