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25. 13:09ㆍ미스터리 & 공포
1959년 소련의 ‘우랄산맥’을 등산중이던 9명의 산악인들이 죽은 상태로 발견된다. 6명의 대원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고 나머지 3명은 심한 외상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처음에 조사팀은 무엇인가 그들을 공격하였고 텐트 밖으로 탈출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그들이 입고 있던 옷은 당시 외부의 폭설과 영하의 기온에 맞지 않는 휴식할때나 입는 얇은 옷이었다.
1959년 소련의 ‘우랄산맥’을 등산(스키트래킹을위한)하기 위해 남자 8명 여자 2명이 한팀을 이룬다.
이번 원정의 목표는 사고 현장에서 북쪽으로 10Km 떨어진 ‘오토르텐’에 도달하는 것이었는데 이 코스는 스키타는 사람들에게 유명한 곳이었다.
그들은 1959년 1월 25일, ‘스베르들로프스크‘의 한 마을인 ’이벨‘에 도착하였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1월 27일, 등산이 시작된다.
첫날은 순조로웠으나 다음날 평소 지병이 있던 ‘유리 위딘’은 통증이 심해져서 도중 하산하고 만다. 그를 뒤로 하고 남은 9명은 처음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1월 31일, 고지대에 도착하여 실질적인 등산을 준비하였고 2월 1일, 그들의 험준한 등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악천후로 인한 시야 감소로 방향을 잃고 처음 계획하였던 곳이 아닌 ‘콜렛산’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콜렛산 : 러시아의 만시어로 죽음의 산을 뜻한다.)
도중에 그들은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1.5km 아래의 삼림 지역으로 이동할지 산 비탈에 캠프를 세우고 버틸지 고민을 했다.
올라온 곳을 돌아간다 함은 결국 포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에 리더인 ‘이고리 댜틀로프’는 산 비탈에 캠프를 세워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리는 방법을 택하였다.
마을에서 그들의 소식을 기다리던 ‘유리’는 약속되어 있던 2월 12일에도 연락이 없자 걱정이 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탐험에서 연락이 지연되는 것은 흔하였고 ‘이고리’는 ‘유리’가 하산할 당시 12일보다 좀더 오래 있을 수도 있다고 언질하였기에 그는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2월 20일, 그들의 연락은 없었다. 결국 구조팀이 구성되었고 자원 봉사 학생들과 전문 산악인으로 구성된 첫 번째 구조대가 그들이 향하였던 ‘오토르텐’으로 향한다.
후에는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여 그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고 2월 26일, 구조팀은 ‘콜렛산’ 부근에서 그들의 흔적을 찾게된다.
구조팀이 처음 발견한 것은 심하게 손상된 텐트였다. 텐트는 반쯤 찢어져서 눈으로 덮여 있었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한것은 실종자들의 소지품과 산악용 도구가 텐트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신발까지도…
텐트를 조사하던 그들은 텐트가 안쪽에서 찢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외부에서 누군가의 공격이 아닌 내부에서 텐트를 찢고 나온 것이다.
근처에서 그들의 산악 일기가 발견되었다. ‘오토르텐’으로 향하던 도중 길을 잃었고 산 비탈길에 캠프를 세웠다는 내용을 끝으로 더 이상 적혀있는 것은 없었다.
텐트 외부에는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발자국은 여러 종류였는데 맨발이거나 양말만 신었거나 혹은 한쪽 신발만 신은 발자국도 있었다.
구조팀은 발자국을 따라 북동쪽으로 이동하였고 500m쯤 지나자 눈에 덮여 더 이상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진행 방향을 따라 지속적으로 수색을 하던 구조팀은 나무 밑에서 싸늘하게 굳어있는 두명의 실종자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신발을 신지 않은 채 속옷만 입고 있었고 결국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으로 보였다. 나무는 누군가 올라가려고 했는지 5m 아래에 있는 가지들은 아래쪽으로 꺽여 있었다.
나무 근처에서 세 구의 시신이 더 발견되었다. 그들은 나무에서 각각 300m, 480m, 630m의 거리를 두고 있었고 캠프 방향을 향한 상태로 죽어있었다.
나머지 4명의 실종자는 2개월 후인 5월 4일, 숲의 가장자리에 있는 4미터 아래 계곡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다.
처음 발견된 5명 중 ‘루스테 슬로보딘’의 경우 두개골에 약간의 금이 갔지만 치명적으로 보이진 않았고 5명 모두 결국 저체온증으로 죽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들의 죽음만 본다면 산행 도중 패닉에 빠져 죽음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겠지만 나머지 4명의 시신에서 발견된 흔적이 뭔가 이상하였다.
후에 발견된 ‘니콜라이’의 경우 심한 두개골 손상을 입었고 ‘류드밀라’와 ‘알렉산더’는 무엇인가 가슴을 공격한 것처럼 심한 외상을 입었었다.
이를 조사한 ‘보리스’박사는 그와 같은 피해를 입기 위해선 자동차 충돌에 맞먹는 힘을 정면에서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여러 의혹설들이 생겨났다.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땅을 침범한 그들을 공격하였다는 추측도 있었으나 이들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의 죽음을 조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실종자들 6명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고 3명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쿨렛산’ 근처에서는 9명의 실종자 외에 다른 이들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텐트는 안쪽에서 뜯겨져 있었다.
실종자들은 식사 후 6~8시간뒤에 사망하였다.
텐트에서 나온 후 실종자들은 스스로 캠프를 떠났다.
한명의 옷에서 높은 수치의 방사능이 발견되었다.
결국 그들은 산행 도중 패닉에 빠져 사망하였다고 결론지었고 이를 조사하던 조사팀은 1959년 5월, 공식적으로 조사를 중단하였다.
이 지역은 사건 발생 후 3년동안 폐쇄되었지만 현재는 접근이 가능하다. 여러 가지 의혹이 많았지만 결국 그들의 죽음을 명확하게 밝혀낸 것은 없었다.
그들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장소는 산악팀의 리더인 ‘이고리 댜틀로프’의 이름을 따서 ‘댜틀로프 고개’라 지어졌고 이 사건은 ‘댜틀로프 고개 사건’이라 불리 우며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미스터리 & 공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구리 소년 (0) | 2019.09.20 |
---|---|
약 스압, 데이터 주의) 다윈상 (0) | 2019.09.09 |
괴담인가 실화인가 '오랑 메단호' (0) | 2019.07.29 |
스코틀랜드의 식인귀 소니빈 (0) | 2019.07.10 |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과연 사고로 인한 침몰인것인가? (0) | 2019.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