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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만에 해결된 뷰티퀸의 죽음

2019. 9. 4. 12:28범죄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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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제가 글을 못쓰는 편이라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좀더 노력해서 부족한 부분 채워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봐주시는분들 감사드립니다.

 

 

 

 

 

아이린 가르자’. 그녀는 텍사스 남부에서 훌륭한 교사이자 뛰어난 미모때문에 ‘뷰티 ‘(한국으로 치면 미스코리아)으로 선발된 여성이었다.

 

모난곳 없고 사람들과도  어울렸기에 모두의 사랑을 받던 그녀가 1960 4 16. 교회에 미사를 하러 간다고 나간  실종된다.

 

그녀의 실종에 사람들은 걱정하였고  규모의 수색대가 형성되었다. 마지막으로 목격된 교회를 중심으로 수색을 하던 그들은 4 18 ‘아이린 지갑과 왼쪽 신발을 발견한다.

 

그날 저녁 ‘아이린 집에 그녀가 납치되어 인근 호텔로 끌려갔다고 주장하는 전화가 걸려왔지만 장난 전화인 것으로 추후 드러났다.

 

4 21. 수색팀은 Km 떨어진 운하에서 싸늘하게 누워있는 ‘아이린 발견한다. 감식 결과 ‘아이린 질식사했다는 것을   있었고 경찰은 살인 사건으로 수사 방향을 잡았다.

 

폭행의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운하에 잠겨있던 그녀의 몸에는 범인을 특정할  있는 다른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경찰은 전과가 있던 성범죄자들과 ‘아이린 직장 동료, 가족,  남자 친구들을 포함해서 500여명의 사람들을 조사하였다.

 

그녀의 죽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이에게 2500달러의 보상금이 책정되었고 텍사스 남부 기업인들은 1만달러의 보상금을 내놓았다.

 

아이린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은 그녀의 고해를 들었던 ‘ 페이트였다. 그는 가장 의심스러운 용의자였다.

 

  심문 당시 ‘아이린 고해를 들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그날 고해실을 이용한 것은 ‘뿐이라는 사실을 경찰이 지적하자 자신이 그녀의 고해를 들었다고 번복했다.

 

 동료들은 그날 저녁 잠시 자리를 비우고 손에 상처를 입고  그를 의심하였다. 그는 안경이 깨져서 새로 맞추려고 마을로 갔고 그곳에서 벽돌을 만지다가 긁힌 상처라고 주장한다.

 

그의 억지스러운 주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동료들은 그를 범인이라 생각하였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런데에는 그의 과거 행실이 한몫했다. 사실 ‘아이린 사망하기 3주전에 ‘ 성찬식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마리아 성폭행한 용의자로 지목된적이 있었다.

 

 

마리아 자신을 성폭행한 남성을 정확히 보지 못하였기에 경찰은 교회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에 들어갔고 ‘ 사건의 당사자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날 교회에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마리아 만나지 않았다며 부인하였고 교회 지도자들은 신부가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무마하기 위해 손을 쓰기 시작했다.

 

강간죄로 ‘ 기소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그런 전적이 있었기에 경찰과 동료들은 그를 의심하였으나 별다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고 그후 ‘ 다른 지역의 교회로 가게된다.

 

1970 ‘ 성직자의 길을 벗어나 결혼  3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는  협회에서 17년간 자원 봉사자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이린 죽음은 콜드 케이스로 남게 되었다. 그러던 2002 어느날, ‘아이린 사건이 다시 언급되기 시작한다.

 

아이린 사건을 언급한 이는  교회의 신부인 ‘데일 타케니였다. ‘데일 ‘ 다른 지역의 교회로 갔을  그곳에 있던 신부였는데 어느날 ‘으로부터 고해를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고해의 내용은 자신이 한여성을 성폭행 하고  다른 여성을 죽였다는 내용이였다. 당시 ‘데일 그의 고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가 2002년에 폭로한 것이다.

 

그의 주장으로 인해 수사가 재개되었고 수사관들은 ‘ 과거 심문 당시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했다는 수사 보고서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데일 동료 신부였던 ‘조셉 오브라이언 역시 ‘에게 고해를 들었다고 주장하며 나섰지만 가장 중요한 물질적 증거가 없었다.

 

물질적인 증거가 없었기에 ‘아이린살해 사건에 관하여 ‘ 기소는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2005 ‘조셉 사망하면서 다시금 콜드 케이스로 분류된다.

 

사건을 맡았던 ‘르네 구에라’(검사) 초기 경찰의 수사는 부실했지만 ‘조셉 조사 당시 치매를 앓고 있었고 물리적 증거가 없다며 재조사 요청을 거부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녀의 죽음에 시달려야 합니까? 그녀는 이미 죽었고 범인은 누군지 알지 못합니다.”

 

2014, ‘르네 해임을 주장하던 ‘리카르도 로드리게스 ‘아이린 가족들은 정의를 원한다며 선거에 나섰고 만약에 자신이 당선된다면 ‘아이린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볼 것이라는 연설을 하였다.

 

 

그는 당선되었고 약속대로 ‘아이린사건을 재조사하기 시작하였다. 2016 2, ‘ 체포된다. 체포 당시 그는 고령(83) 나이 때문에 보조기구 없이는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여전히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였고 검찰측은 700페이지 분량의 증거를 제출하였다. 기자들은 ‘ 살인자라고 비난하였으며 그동안은 교회의 보호 때문에 그가 체포되지 않았다는 기사를 냈다.

 

2017 3, 처음 ‘ 범행에 관하여 고해를 들었다고 주장한 ‘데일 다시 한번 증인으로 법정에 섰고 비공개 증언을 하였다.

 

2017 12 7, 결국 ‘ ‘아이린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아이린 사망  57년이 지난후에야 사건이 해결되었다며 57년형을 주장하였지만 그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