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12. 13:50ㆍ범죄자 이야기
안녕하세요
프랑스에서 정치가 및 의사로 지내던 남자 '마르셀 프티오'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의인인척 하는 쓰래기였는데요 이번에는 요청작이 아닌 제 임의로 선정한 사람입니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인자, 미스터리, 범죄와 관련된 요청작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영상본 캡쳐본 모두 동일 내용을 담고있으니 편하신걸로 감상해주세요
캡쳐본이 보시기 편하실겁니다.
‘마르셀 프티오’는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의사였다. 사회적 명성과 부를 축적한 그가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거라 누가 생각이나 하였을까?
그에게 희생 당한 사람은 총 23명.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60명 이상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1897년 1월 17일, 그는 프랑스의 오세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우체국 직원이었고 어머니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의 학창시절, 그는 소위 말하는 문제아였다. 우체통을 털거나 수업 시간에 몰래 가져온 아버지의 총을 쏘기까지 하였다. 그는 정신 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여러 번 정학을 당하게 된다.
정신 장애로 인해 그가 했던 범죄들은 모두 책임을 묻지 않게 되었고 그는 그렇게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특별학교를 다니게 된다.
세계 1차대전 당시 그는 군대에 입대를 하였고 몇 번 전투에 참여를 하였으나 부상을 입고 독가스공격으로 인해 정신 쇠약 증상까지 더해져 병원으로 이송된다.
병원에서 마취제를 비롯한 군수품들을 훔치던 그는 어느날 덜미가 잡혀 체포되어 감옥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정신 장애를 인정받아 병원으로 이송된다.
병원에 있는 동안 의사들은 그가 다양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고 판단하였으나 3주만에 전선으로 복귀되었고 발에 총을 맞은 그는 장애 연금을 받고 은퇴하게 된다.
전쟁이 끝났을 당시 그는 참전 용사를 위한 단기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8개월 만에 의학 학위를 받게 되었고 인턴으로 정신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1921년 12월 정식으로 의사가 된 그는 환자들에게 불법적인 시술과 빼돌린 의약품들을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델라뷰’라는 젊은 여성과 연인 사이였는데 어느 날 ‘델라뷰’가 실종되고 만다. 몇몇 이웃들은 ‘마르셀’이 ‘델라뷰’를 차의 트렁크에 싣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였고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으나 별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자 결국 ‘델라뷰’가 가출을 하였다고 결론지어 버린다. (…..?)
1926년, ‘마르셀’은 시장 선거에 출마하였고 사람들을 고용하여 경쟁자들을 괴롭혔다. 그는 결국 시장에 당선되어 도시의 돈을 횡령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오랜기간동안 부를 축적하였으나 수상한 거래 흔적이 문제가 되어 1931년 8월, 시장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었고 시장직에서 물러난 지 5주만에 주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년동안 그는 마을의 전력비용을 임의로 조정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이번에도 그의 비리는 적발되었고 주의원에서 퇴출당하여 결국 그는 파리로 거취를 옮겨 자그마한 병원을 차리고 의사생활을 시작하였다.
1940년 독일에 의해 점령당한 프랑스의 국민들은 독일로 강제징용되기 시작하였다. ‘마르셀’은 독일로 가게 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가짜 장애 증명서를 만들어주었다.
이 기간에 그의 끔찍한 범행이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을 도울 공범을 포섭한 뒤 독일군에게 쫓기는 유대인, 저항군, 일반 범죄자들을 타겟으로 삼았다.
1인당 25000프랑의 가격으로 자신들이 탈출로를 안내해준다며 그들에게 접근하였고 외국으로 나가기전에 예방 접종이 필수라며 그들에게 청산가리를 주입한다.
돈을 받고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마지막에는 귀중품까지 빼앗아가는 악랄한 범행을 저지른 그들은 증거인멸을 위해 소각시설까지 갖춰 모든 증거를 인멸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는 독일군으로부터 도망다니는 사람들을 돕는 의로운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고 그의 손에 희생된 이가 23명에 달하였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그의 범행도 1944년 3월, 한 이웃의 신고로 끝을 맺는다. 평소 심한 악취를 풍기고 굴뚝에서 종종 많은 양의 연기를 내뿜는 것을 의심한 이웃이 신고를 한 것이다.
경찰은 그의 집 지하실에서 희생자들의 유해와 물품을 발견하였고 결국 ‘마르셀’과 그의 일당들은 도망을 다니다 1944년 10월에 체포되었다.
재판이 열렸고 당시 언론에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저항군이며 많은 도망자들의 새로운 삶을 위해 헌신하였다고 주장하였지만 그의 집에서 나온 증거가 그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23건의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그는 1946년 5월 25일 단두대에서 참수당하였다. 후에 그의 이야기는 다큐, 영화, 음악으로도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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