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7. 11:02ㆍ범죄자 이야기
영국 런던을 외부와 연결해 주는 세 개의 도로 중 하나인
랫클리프 고속도로 인근은 가장 혼란스러운 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지저분한 사업과 어두운 골목이 존재하는 낡아빠진 곳이라 표현했습니다.
선원들이 주로 찾는 지역이다 보니 거친 다툼이 가끔 일어나기도 했던 곳이었죠.
29번지에는 옷가게를 운영하는 집주인 티모시 마르와 그의 아내, 어린 아들,
그리고 견습생인 제임스와 하녀 마가릿, 이렇게 다섯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1811년 12월 7일 저녁, 티모시는 마가릿한테 굴을 사와 달라고 부탁했고
그녀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20분정도 지나서 돌아왔을 때 그녀는 현관문이 잠겨있고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을 심부름 시키고 그들이 자고 있다고 생각한 마가릿은 화가 났습니다.
열쇠도 가지도 나가지 않았던 그녀는 여러 번 초인종을 누르며 문을 두드렸고
잠시 후 티모시 아들의 울음 소리와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어 주러 온다고 생각하며 마가릿은 잠시 기다려 봤지만 다시 집안은 조용해졌습니다.
조금 전 까지 울던 아이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죠.
그녀가 문을 두드리는 소란에 이웃 주민들이 몰려들었을 때도
집안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옆집에 사는 머레이는 마가릿에게 사정을 듣자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지며 울타리를 넘었습니다.
집의 뒤편으로 향한 머레이는 지하로 향하는 뒷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티모시가 실수로 문을 잠그지 않아다 생각하며 안으로 향합니다.
지하를 통해 1층으로 올라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망해있는 티모시와 그의 아내, 아들, 그리고 견습생 제임스였습니다.
머레이는 놀라며 곧바로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고 밖에서 기다리던
마가릿과 소란 때문에 출동한 경찰 역시 사망해있는 그들을 보게됩니다.
1811년에 영국은 공식적인 경찰력이 없었습니다.
1829년이 되어서야 영국 왕실은 런던에 조직적인 상근 경찰력을 제공 했다고 합니다.
즉, 범행이 일어난 시기에는 지역 순찰이나 현상금을 관리하는 최소한의 체계를 갖췄던
보안 대원 뿐이었고 그들은 현장을 보존하거나 수색하는 방법을 배운 적 없는 초보였습니다.
침실에서 범행에 사용됐을 것으로 보이는 혈흔이 묻은 쇠망치가 발견되자
경찰은 범행 도중 마가릿이 오자 당황한 범인이 흉기를 버리고 도망쳤다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마가릿이 처음 초인종을 누를 때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집 내부에서
움직이는 인기척이 들렸으니 아마 그때까지 범인은 내부에 있었을 겁니다.
피해자들의 몸에 남은 상처로 보아 결정적인 상처는 날카로운 흉기였습니다.
초반에 경찰은 흉기가 티모시가 사용하는 끌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합니다.
뒷문에는 세 개의 다른 발자국이 남아있었는데 하나는 집안으로 들어갔던
이웃 주민 머레이의 발자국이었고 다른 두 개는 각각 다른 이의 발자국이었습니다.
발자국에는 그날 티모시가 작업했던 톱밥의 흔적과 혈흔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범인의 발자국이 분명했습니다.
서랍만 열어도 보였을 현금을 범인은 가져가지 않았고 어린 아이까지 살해한 것에
경찰은 원한에 의한 범행이라 판단하고 수사에 임했습니다.
현장에 남아있던 발자국은 선로를 따라 쭉 이어져 있었고 선로 인근에 사는 주민은
몇 분 전에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갔다고 증언했습니다.
경찰은 두 명 이상의 범인이 연루되어 있는 범죄라 생각하며
혹여 티모시가 사악한 갱단의 목표가 되진 않았나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티모시는 헌신적이고 가정적인 남성으로 주위에 민폐를 끼치거나
돈에 관해 문제가 있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자 수사는 난항을 겪게 됩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쇠망치를 유심히 살피던 경찰은 I.P.라는 이니셜이 써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이것으로 범인을 찾기란 어려워 보였습니다.
티모시 일가의 시신은 가정 내 침대에 안치됐고
대중들에게 그 집에 방문해 그들을 볼 수 있도록 허락되었습니다.
당시 어는 누구도 범죄 현장을 보존하거나 죽은 이들을 존중한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대중들은 스캔들과 이러한 범죄를 직접 보고 싶어하는 강한 욕구를 갖고 있었죠.
상처도 봉합 되지 않은 시신을 보기 위해 런던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한 관행이 있던 곳이었고 그러한 것이 당연한 시대였습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서 범행이 일어난 것이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앞다투어 새로운 자물쇠를 달기 시작할 정도였다고 하니깐요.
사건이 발생하고 12일 뒤인 12월 19일, 인근에 있는 81번지의 한 주점에서
두 번째 범행이 일어납니다.
이 주점은 존 윌리엄슨과 아내 엘리자베스가 운영하던 곳으로
그들은 항상 문을 일찍 닫았기에 주점 치고는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그날 존은 경찰에게 갈색 재킷을 입은 남자가 주위를 서성이며
자신의 주점을 주시하고 있으니 체포해달라고 신고했습니다.
얼마 전 일어났던 범죄 때문에 존은 수상한 남성이 더욱 두려웠을지 모릅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마을을 순찰하고 있을 때 ‘살인자!!’라는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경찰이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을 때 이미 같은 소리를 듣고
주민들이 모여든 상태였습니다. 소리가 난 장소는 존의 주점이었습니다.
잠시 후 주점 3층에서 한 남성이 매듭을 이은 시트를 타고 내려왔고
사람들은 겁에 질려 두려워 하고 있던 그 남성이 주점에서 하숙을 하던 존 터너임을 알아봅니다.
상황이 심각하다 생각한 경찰과 주민들은 억지로 문을 열어 들어갔고
그곳에서 사망해 있는 존과 엘리자베스를 발견합니다. 35
티모시 일가와 비슷한 상처를 입고 사망해있는 그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동일범의 소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3층에서 잠을 자고 있던 존의 손녀와
범인을 목격하고 탈출한 터너가 말이죠.
존의 손녀는 사람들에게 발견됐을 때도 1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잠에 깊게 빠져있었다고 합니다.
3층에서 잠을 청하던 터너는 이상한 소리에 1층으로 내려가 범인을 목격했고
3층으로 도망쳐 창문을 통해 탈출했던 겁니다.
그는 범인의 뒷모습을 보았는데
180cm정도의 키에 약간 발을 절고 있었다 증언했습니다.
경찰은 주점 1층 창문이 하나 열려있고 혈흔이 묻어있는 것으로 보아
범인이 그곳을 통해 도망쳤다고 판단했습니다.
범인이 향한 장소는 진흙으로 덮인 비탈길이었기에 범인의 옷이나 신발은
진흙이 묻어있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용의자들 중에는 존 윌리엄스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두 사건의 피해자들을
모두 알고 있는 인물이었고 사건이 있던 날 자정 무렵 집으로 돌아왔던 인물이었습니다.
비록 다리는 절지 않았지만 180cm정도의 키에 주점에 자주 방문한 손님이었던 존은
결국 그를 의심하던 룸메이트의 신고로 심문을 받게 됩니다.
첫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쇠망치에 적힌 이니셜 I.P.가 사실 J.P.였고 이는 바다에 나가있는
존 피터슨이라는 선원의 것임이 드러나자 윌리엄스는 더욱 의심을 받았습니다.
존 피터슨의 쇠망치를 윌리엄스가 자주 사용했다고 말한 목격자가 나타난 겁니다.
게다가 두 번째 범행이 있던 다음 날 윌리엄스의 옷을 세탁한 여성의 신고도 있었습니다.
세탁 당시 그녀는 윌리엄스의 옷이 찢겨있었고 혈흔이 묻어있어 이유를 묻자
그는 시비가 붙어 싸움을 벌였다며 얼버무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한동안 일을 하지 않았기에 돈이 없었던 그가 두 번째 사건이 발생하고
밀려있던 방세를 낸 것 역시 수상했습니다.
두 번째 사건에선 첫 번째 사건과는 다르게 집주인의 시계와 현금이 사라져 있었기에
경찰은 그를 더욱 의심하며 강도 높은 심문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 범행도 돈을 노리고 벌였으나 마가릿이 너무 빨리 돌아오는 바람에
도망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두 번째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경찰의 생각이었습니다.
윌리엄스는 자신이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고 돈을 받아왔다며 영수증을 보여줬으나
그들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당시는 혈액에 대한 증거를 처리하는 방법이나 패턴을 분석하는 방법,
심지어 지문으로 범인을 구별하는 방법 역시 없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찰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은 목격자를 찾거나
범인의 자백을 받아내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윌리엄스는 어느 순간 살인죄로 기소됐고
12월 28일에 그의 첫 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날 윌리엄스는 재판대에 서지 못했습니다.
감옥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재판은 중지되지 않았습니다.
윌리엄스가 없는 상태로 진행된 재판에서 그는 결국 유죄를 판결 받습니다.
그가 자신의 스타킹을 가져갔고 다음날 진흙과 혈흔이 묻은 스타킹을 가져왔다고 증언한
또 다른 룸메이트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에 사람들은 재판부가 아무런 죄도 없는 인물에게 죄를 뒤집어 씌어
민심을 달래려고 한 것 아니냐며 추궁했습니다.
그들은 정확한 물증도 없었고 목격자가 범인이 발을 절었다고 했지만
윌리엄스는 그러지 않았다며 허술한 법체계를 비난합니다.
1개월 뒤 경찰은 윌리엄스가 범행에 사용했다고 보여지는 끌을 대중에게 공개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범행에 사용됐다는 증거는 없었습니다.
과연 이 사건이 과거에 암암리에 행해졌던 살인자 만들기인지(현대에도 있는)
아니면 실제로 윌리엄스가 범인일지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가 사망한 뒤로 인근 지역에선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범행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윌리엄스가 진범이라 그런 것인지
진범이 좋은 기회라 생각하며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던 것인지 역시 알 수 없습니다. 63
정확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윌리엄스는
랫클리프 고속도로 살인마로 역사에 기록 되며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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