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21. 20:15ㆍ범죄자 이야기
1985년 8월 4일, ‘영국’ ‘톨순트 드어시’에 있는 한 농장.
농장을 운영하는 ‘네빌 밤버’와 그의 아내 ‘준 밤버’는
오랜만에 놀러온 딸 ‘셸리아’와 손자 두명을 반기고 있었습니다.
이틀 뒤인 8월 6일 저녁, ‘네빌’의 아들 ‘제레미’가 농장에 방문합니다.
가족이 모인 저녁 식사에서 ‘제레미’는 누나인 ‘셸리아’에게
아이들을 위탁 가정에 맡겨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사실 ‘제레미’는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었고 휴양 차 고향으로 왔던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동생의 제안을 거절하며 약간의 다툼을 끝으로 가족 식사는 마무리됩니다.
그날 밤 9시 30분, 농가에서 쉬고 있던 일꾼들은 ‘제레미’가 떠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제레미’를 제외한 일가족 5명 모두가 사망한 상태로 발견됩니다.
누군가의 총격에 의한 사망. 하루아침에 찾아온 비극에 홀로 남게 된 ‘제레미’는 오열했습니다. 04
경찰은 ‘셸리아’가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전적이 있었기에
그녀가 범행을 저지르고 스스로도 목숨을 끊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셸리아’가 정신분열증을 앓았지만 그녀의 범행이라는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왜 경찰은 그녀의 범행으로 사건 방향을 잡았을까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듯한 그녀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건 신고자인 ‘제레미’의 증언 때문입니다.
8월 7일 새벽, 경찰서로 전화한 ‘제레미’는
좀 전에 아버지로부터 ‘셸리아’가 총을 가지고 있고 미쳐버렸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그 후 연락이 두절됐다 말했습니다. 07
곧바로 경찰이 ‘네빌’의 집으로 출동했고 그곳에서 5명 모두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겁니다.
그렇게 ‘셸리아’가 ‘제레미’의 증언으로 범인으로 지목되면서
모든 범행은 그녀의 소행으로 결론 지어졌고 ‘제레미’는 가족들을 화장(火葬) 할 수 있었습니다.
곧이어 열린 일가족의 장례식에서
‘제레미’는 여자친구 ‘줄리아’와 함께 슬픔을 나누며 가족들을 떠나보냅니다.
라틴어 중에 ‘쿠이 보노’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의 이득인가?]라는 이 말은 한때 로마에선
‘알리바이’보다 우선시돼 증거로 채택 되기도 했었습니다. 10
이 사건에서 ‘쿠이 보노’는 ‘제레미’였습니다.
‘네빌’은 지역 판사이자 전 RAF 조종사로 말년에는 농장을 운영하며 노년을 즐기고 있는
부유한 남성이자 ‘제레미’와 ‘셸리아’를 입양했던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네빌’이 소유하고 있던 작은 회사만 해도 40만 파운드의 가치가 있었고
모든 재산을 합친다면 수백만 파운드는 넘을 정도로 그는 부유했습니다. (2020년 기준 대략 17억원)
그가 예전에 작성해둔 유서에는 ‘제레미’와 ‘셸리아’에게 균등한 재산을 나눠 준다 명시돼 있었지만
이제는 ‘제레미’ 홀로 남은 상태라 모든 재산은 그에게 돌아갑니다. 14
사건을 살펴보던 형사는 ‘제레미’를 주시했습니다.
그는 다른 경찰들과 달리 ‘제레미’가 무언가 의심스러웠습니다.
사건 당시 만약 여러분이 ‘네빌’의 입장이었다면
‘제레미’에게 전화를 걸어 본인의 상황을 알렸을 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바로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을 겁니다.
형사는 이점을 놓치지 않았고 통화 기록을 살펴보던 중
‘네빌’이 ‘제레미’에게 전화를 건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기록이 누락됐나? 그럴수도 있지만 타이밍이 너무..) 17
스스로 죽었다고 한 ‘셸리아’의 총상이 2군데라는 것 역시 수상했습니다.
둘다 치명적인 상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왜 수상하다 그는 생각했을까요?
그날 농장에 있던 다른 이들은 총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한, 두발이면 모를까 그날 발사된 총알은 총 25발입니다.
아무도 총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건 소음기를 단 상태로 범행이 일어났다는 걸 말해줍니다.
근데 소음기가 소총에 남아있지 않다는 건 그녀가 스스로에게 총을 쏜 뒤
소음기를 빼고 어딘가에 버렸다는 건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어느 누가 소음기단 총으로 자살하고 소음기를 분리하지?) 20
게다가 ‘제레미’가 경찰에게 신고 전화를 한 후
곧바로 자신의 여자친구 ‘줄리아’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도 이상했습니다.
당시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한 ‘제레미’.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던 그가 곧바로 농장으로 가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여자친구와 통화를 했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했습니다.
‘제레미’가 신고 전화를 했던 곳 역시 응급 전화(영국은 999)가 아닌
지역 경찰서였기에 형사의 의심은 더욱 커져갑니다. 23
그러던 중 사건 발생 한 달 후인 9월 7일, ‘제레미’의 여자친구 ‘줄리아’가
‘제레미’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사건은 재조명 됩니다.
‘줄리아’는 평소에 ‘제레미’가 “모두 제거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비난을 자주 했고,
최근에 부모님이 ‘셸리아’에게 런던의 비싼 아파트를 사준 것에 분노하며 항상 화가나 있었다 밝혔습니다.
그러던 중 ‘제레미’가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고 자신의 범행을 ‘줄리아’에게 고백했기에
이 사실을 경찰에게 전달했다는 것이 그녀의 성명서에 담긴 내용이었습니다.
다음날인 9월 8일, ‘제레미’는 ‘줄리아’의 말이 거짓이라 주장했지만
결국 체포됐고 9월 29일 살인 혐의로 기소됩니다. 27
사건을 조사한 검찰은 범행 당일 ‘제레미’가 집으로 간 뒤
자전거를 타고 몰래 농장으로 돌아왔고 범행을 저질렀다 주장했습니다.
소음기를 부착한 소총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셸리아’의 짓처럼 꾸미려 했으나
소총의 길이에 소음기까지 더해지면 스스로 쏘기는 불가능 하다 판단한 ‘제레미’가
소음기를 빼고 인근 친척집 천장에 숨긴 거라는 게 검찰의 주장이었습니다.
실제로 친척집에서 발견 된 소음기에서 ‘셸리아’의 혈흔이 나왔는데
자살한 이가 본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소음기를 분해 후
거리가 있던 친척집 천장까지 갈 수 있었을까요? 범행은 제 3자의 소행이 분명했습니다. 30
게다가 사건 당일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고 난 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제레미’가
한시간이 넘어서야 왔다는 것은 그가 소음기를 친척집에 숨겨 증거 인멸했고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조작이라 주장합니다.
‘제레미’가 말했던 아버지의 전화는 거짓임이 판명 난 상황이라
모든 것은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제레미’의 변호인은 그가 그날 늦게 농장에 도착한 이유는 혼란스런 상황이었고
두려움 때문에 빠르게 가지 못했다 말합니다.
그는 그날 ‘제레미’가 받았다는 아버지의 전화는 기록이 누락됐을 가능성이 있다 주장했습니다.
소음기가 발견된 친척집의 사람들이 의심스럽다 말했으나
그들은 명백한 알리바이가 있었기에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34
변호인은 ‘제레미’가 평소에 부모님을 욕했다고 말한 증인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그의 말을 잘못 해석했다 주장하며 당시는 DNA판별 기술이 없었기에
소음기에 남은 혈흔은 ‘셸리아’의 혈흔이 아니라 부모님들의 혈흔이 섞여 있는 것일 가능성도 주장합니다. (검사 못믿어)
배심원단은 9시간의 회의를 걸쳐 ‘제레미’에게 유죄를 판결했고
판사는 그에게 최소 25년의 징역형을 선고합니다.
이는 ‘제레미’가 평소 돈에 쪼들려 강도짓을 일삼았고
사건 발생 후 ‘셸리아’의 누드 사진과 자신의 이야기를 팔려고 한 것도 한몫 했을겁니다. 37
‘제레미’는 지속적으로 항소했지만 1994년 12월, ‘마이클 하워드’ 내무부 장관은
‘제레미’가 평생 동안 감옥에 남아 있을 것이라 말하며 그의 모든 항소를 기각합니다.
2015년부터 인권 단체는 ‘제레미’의 석방을 위해 많은 캠페인을 벌였고
DNA검사가 실시됐지만 정확한 결과가 나오기는 힘들었습니다.
검사하기에는 남아있는 흔적도 적었고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화장됐기에
그들에 가족들의 DNA 데이터를 기반으로 검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법원은 이를 불명확한 증거라 말하며 그의 석방은 좌절됩니다.
2020년 초에는 그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방영되며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41
과연 그는 돈을 위해 양부모와 누나, 조카를 죽인 괴물일까요? 아니면 무고한 누명을 쓴 인물일까요?
법원은 ‘제레미’를 범인이라 재판했지만
그는 아직도 감옥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삶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의 할머니는 ‘제레미’가 체포됐을 때 유언장에서 그를 제외시켰다.
유산의 대부분은 양어머니 ‘준’의 여동생에게 돌아갔다.
‘제레미’는 감옥생활 중 재산의 일부를 되찾기 위해 두 건의 소송을 냈지만 실패했다.
‘제레미’는 경찰이 범죄 현장을 오염시켰다 주장한다.
그의 지지자들은 경찰이 사건과 관련된 40,000개 이상의 문서와 211장의 사진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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