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12. 15:58ㆍ범죄자 이야기
얼마 전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이제 리치몬드로 떠납니다…
그곳에 지인이 별로 없기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어요.
저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채팅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2005년 8월부터 미국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교에 다니게 된 신입생
테일러 마리 벨이 개인 SNS에 남긴 글입니다.
그녀는 활발한 성격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소위 우리가 말하는 인싸였습니다.
집에서 대학교까지는 차로 1시간 30분이 걸리기에 그녀는 기숙사 생활을 했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는 착실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2005년 9월 5일에 사라집니다.
그날 저녁 테일러를 마지막으로 본 이는 그녀의 룸메이트였습니다.
룸메이트는 그날 남자친구와 기숙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테일러가 들어왔고
자신들을 보더니 좋은 밤을 보내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고 합니다.
그 시각이 오후 10시 30분쯤.
테일러는 자동차 열쇠와 휴대폰, 40달러를 갖고 기숙사를 빠져나갔습니다.
룸메이트는 그녀가 몇 시간 후 돌아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어도 테일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전화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녀가 사라지고 이틀 뒤인 9월 7일에 실종 신고가 들어갔지만
경찰의 반응은 생각보다 무덤덤했습니다.
매년 미국 전역의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종종 사라지곤 합니다.
스트레스, 연인과의 결별, 지루함을 이겨내고자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곤 하죠.
경찰은 테일러 역시 그러한 대학생들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고
신고를 받은 후 11일 동안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테일러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질리 없다며 경찰을 비난했습니다.
현금 40달러만 갖고 지갑은 놔둔 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말이죠.
그녀의 지인들 역시 경찰에 지속적으로 수사 요청을 했고
테일러가 사라지고 11일이 지난 후에야 다른 관할로 넘어가며 수사가 시작됩니다.
수사가 시작되고 다음날인 9월 17일, 비번이었던 경찰관이 개를 산책 시키던 중
테일러의 차량을 발견하면서 그녀의 실종에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합니다.
테일러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기숙사로부터 2Km쯤 떨어진 주택 단지 지역에서
발견된 그녀의 차량은 기존과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번호판이 두 달 전에 도난 신고가 들어온 오하이오주의 번호판으로 교체돼 있었던 겁니다.
그녀가 사라진 뒤로도 한동안 사용한 흔적이 있어 보이는 자동차.
번호판을 바꾼 이는 테일러의 실종과 관련된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12시간 넘게 그녀의 차 주변에서 잠복했던 경찰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법의학 분석을 위해 FBI에 넘겼으나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가 실종된 날 전 남자친구였던 벤자민 파울리를 만났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경찰은 그를 주목했습니다. 마지막 목격자는 룸메이트가 아닌 벤자민이였던 겁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벤자민은 올해 초에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테일러와
20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인 사이로 발전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만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헤어진 뒤 친구 사이로 남으며
연락을 하고 지내는 정도였다 합니다.
그날 벤자민은 테일러에게 스케이트보드를 빌리기 위해 만났고 했고
저녁 10시쯤 헤어졌다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10시 18분에 기숙사 안으로 들어간 테일러와
그녀를 기다리던 벤자민의 모습이 담긴 CCTV를 확보하면서 그의 거짓말이 들통납니다.
그날 테일러의 룸메이트는 그녀가 자신과 남자친구를 위해 자리를 피해 준다 생각했지만
영상으로 보면 처음부터 테일러는 벤자민과 함께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벤자민이 자신의 웹사이트에 죽음과 부패의 이미지, 여성들에 대한 미묘하고
노골적인 묘사를 업로드했던 전적 때문에 경찰은 그를 더욱 의심했습니다.
과거 경력들은 더욱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예전 여자친구들과 헤어진 이유는
그의 폭력성 때문이었고 어떤 이들은 그를 ‘지킬 앤 하이드’라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벤자민은 양극성장애, 즉 조울증을 겪고 있었고 강도 및 폭력 전과로 인해
총기 소지가 금지된 인물이었죠.
심문 중 그는 자신이 곧바로 테일러와 헤어졌으며 다음날 새벽 5시쯤
술에 취해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강도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복면을 쓴 강도는 그를 차에 태우고 알 수 없는 지역으로 데려갔으며
돈을 빼앗은 뒤 그곳에 자신을 버리고 달아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후 그는 모르는 사람의 도움으로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말했습니다.
물론 그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할 모르는 사람은 수소문해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벤자민의 집을 수색한 경찰은 그의 컴퓨터에서 아동 포르노를 발견했고
9월 23일에 우선적으로 그를 불법 음란물 소지죄로 체포합니다.
테일러가 사라지고 정확히 한 달 뒤인 10월 5일.
리치먼드에서 차로 1시간 20분 거리에 있는 매튜스에서 그녀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그녀의 손과 발에 남아있는 덕트 테이프의 흔적은 타살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매튜스 인근은 벤자민이 자신의 웹페이지에 주로 올리던 장소였습니다.
그는 그곳을 ‘붕괴된 도시의 매혹적인 예’라고 표현했습니다.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2005년 초, 인터넷을 통해 만난 테일러와 벤자민은 짧은 연애 생활 후 헤어졌고
친구로 남아 서로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였다.
벤자민은 9월 5일, 테일러가 사라진 날 밤 그녀를 본 마지막 사람이었다.
9월 6일 새벽에 벤자민은 강도질을 당한 뒤 모르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귀가 할 수 있었지만 이를 증명할 증거는 없다.
벤자민은 16건의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로 체포됐다.
지인들은 벤자민을 ‘지킬 앤 하이드’라 부를 정도로 그는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10월 5일에 테일러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벤자민이 자주 촬영을 하던 장소였다.
이러한 여러 정황증거들과 거듭된 심문으로 결국 벤자민은 자신의 죄를 자백했습니다.
자신이 테일러를 살해한 것 같다고 말이죠.
9월 5일에 벤자민은 테일러를 데리고 매튜스의 한 해변으로 갔고
그곳에서 색다른 사랑을 나누려고 했습니다.
테일러가 그에게 원했던 것은 자신을 구속하고 목을 조르며 성행위를 하는 것이었지만
벤자민은 도중에 그녀가 죽을까 두려워 멈추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테일러는 벤자민을 겁쟁이라 놀렸고 화를 내는 그에게
강제로 당했다고 신고하겠다며 전화기를 꺼냈습니다.
이 뒤로 벤자민은 자신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흐느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녀가 사망해 있었기에 인근 계곡에 그녀를 버려두고 도망쳤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감정이 격해지면 폭력성을 보였고 당시 일을 기억하지 못했기에
‘지킬 앤 하이드’라 불렸던 벤자민.
결국 2006년 1월에 벤자민은 1급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8월에 2급 살인에 대한 탄원이 받아 들여져 30년형을 선고 받습니다.
파울리씨 당신은 유죄를 인정하십니까?
네
인정하시는 거죠?
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네
대학 생활을 고대하며 항상 지인들과 행복한 생활을 즐기던 테일러.
그녀의 죽음을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추모했다고 합니다.
테일러의 열여덟번째 생일, 지속적인 비와 우울한 잿빛 하늘.
소름 끼치는 바람으로 인해 비가 멎었다.
나는 테일러가 살았던 메이플 에비뉴 거리, 그녀가 일했던 카페를 지나
그녀를 기리는 자선 콘서트가 열린 장소에 와있다.
오늘은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었을 것이다.
어른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통과의례, 성인식.
생일 케이크와 파티 대신 그녀의 관에는
몇 개의 생일 축하 풍선이 묶여 있었다.
장례식장 안에는 아름다운 꽃꽂이가
허공에 매달린 슬픔을 떨쳐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테일러를 위한 추모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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