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3. 09:24ㆍ범죄자 이야기
1962년 6월 14일부터 1964년 1월 4일 사이 ‘미국’ ‘보스턴’에서
홀로 사는 여성 13명이 한 명의 범인에게 희생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Boston Strangler’, 즉 ‘보스턴의 교살범’이라 불렀습니다.
경찰은 동일범의 소행이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대중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 당한 뒤 교살 된 상태로 발견됐고
그들의 공통점은 조용하고 겸손한 삶을 살던 이들 이었다는 겁니다.
강제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었기에 경찰은 범인이 피해자들의 지인이거나 배달부,
혹은 수리 기사 같은 서비스 직종의 인물이지 않을까 추측했습니다.
피해자들은 19~85세로 범인은 나이에 상관없이 홀로 사는 여성만 노린다는 것이
알려지자 많은 주민들이 최루가스와 자물쇠를 새로 구입하는 사태도 발생합니다.
첫 범행은 1962년 6월 14일에 일어났습니다. ‘안나 엘사’의 아들 ‘쥬리스’는
오후 7시에 교회에 가기 위해 홀로 사시는 어머니의 집에 방문합니다.
사실 ‘쥬리스’는 그날 예배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부탁을 거절 할 수 없었죠.
문을 두드렸으나 ‘안나’의 대답이 없자 ‘쥬리스’는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가뜩이나 가고 싶지도 않았는데 약속한 시간에 자리를 비우신 건가?
아니면 화장실에 계신가?“라는 생각에 문을 몇 번 두드리자 문이 열렸습니다.
뭔가 지저분하게 어지럽혀져 있는 집안, 욕실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발길은 욕실로 향했고 안을 들여다 본 순간 ‘쥬리스’는 놀라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욕실 안에는 어머니인 ‘안나’가 사망한 상태로 쓰러져 있었던 겁니다.
그는 곧바로 경찰과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10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서랍들 안에 있어야 할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상태로
꺼내져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엔 강도의 소행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화장대 선반에 금시계를 비롯해 값비싼 보석들이 놓여있는 걸 발견하자
이내 생각은 바뀌게 됩니다.
마치 강도가 범행을 저지르려다 당황해 ‘안나’를 죽인 것처럼 꾸며놨지만
노련한 수사관은 범인이 처음부터 ‘안나’를 목적으로 침입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하지만 그녀는 교회를 다니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즐기던,
친구가 거의 없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의 삶에는 아들 이외에는 남자가 없었죠.
원한을 살 일도 없었던 그녀를 목적으로 들어와 범행을 저지르고
별다른 흔적은 남기지 않은 상태로 사라진 범인을 찾기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로부터 2주 후인 6월 30일, ‘니나 프랜시스 니콜스’라는 여성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안나’와 동일한 방식으로 살해 당한 채 발견됩니다.
방 내부는 ‘안나’때와 마찬가지로 어지럽혀져 있었고
눈에 띄는 값나가는 물건들 역시 그대로 방치돼 있었습니다.
바로 그날 또 한명의 여성이 앞선 두 사건의 범행과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당했고
2주만에 일어난 3건의 연쇄 범죄에 경찰 청장은 성명문을 발표합니다.
‘보스턴’ 지역의 모든 여성들은 문을 잠그고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라는 경찰 청장의 말에
밝은 대낮에도 거리는 한산해 질 정도로 사람들은 외출을 두려워 했습니다.
모든 경찰들이 휴가를 취소할 정도로 많은 인력들이 투입됐고
알려진 성범죄자와 폭력적인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시작됩니다.
피해자들이 모두 고령의 여성이었는데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보고 특이한 성적 취향이나
어머니에 대한 어떠한 증오심이 있는 이가 그랬을 가능성 또한 고려해야 했습니다.
경찰들이 범인을 잡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동안에도
범인은 자신의 범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62년 8월 21일까지 2개월간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범행이 6건이나 일어났지만
경찰은 여전히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6번째 범행 후 3개월간 별다른 일을 벌이지 않던 범인은
1962년 12월 5일, 7번째 범행을 저지릅니다.
하지만 이번 범행은 앞선 6건의 범행과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피해자 ‘소피 클라크’는 21살의 젊은 여성이었고 첫 흑인 여성 피해자였습니다. 25
강제로 침입한 흔적은 없었지만 평소 조심스러운 행동을 보이던 ‘소피’가
아무나 함부로 문을 열어줬을 리 없다는 것이 룸메이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 앞선 사건과 다른 점이 발견됩니다. 앞선 피해자들은 모두 홀로 살았지만
‘소피’는 룸메이트 2명과 같이 살았고 마침 그날은 혼자 있던 날이었습니다.
범행 현장에선 처음으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DNA증거가 발견됩니다.
지금같이 DNA수사가 발달된 상태에서는 매우 큰 증거였겠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이웃주민들과 이야기를 하던 도중 ‘루이’(가명)라는 여성이 오후 2시 20분쯤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의 집 문을 두드렸다는 내용을 듣게 됩니다.
낯선 남자는 그녀에게 자신은 아파트 관리인이 보낸 페인트공인데
견적을 위해 돌아다니는 중이라 설명하며 문을 열어달라 요청했습니다.
별 생각 없이 그녀는 문을 열어주었고 욕실을 살펴보던 낯선 남자는
그녀에게 집이 너무 낡았다며 모델링을 생각해 봤냐 질문합니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그의 분위기가 아까와는 너무 다른 것 같아
옆방에서 자고 있는 남편과 이야기 해보라 말하자 낯선 남자는 당황했다 합니다.
그는 황급히 본인의 물건을 챙겨
아파트를 잘못 찾아온 것 같다며 도망가듯 떠났다는 것이 ‘루이’의 증언이었습니다.
아파트 관리인에게 확인해본 결과 그는 누구를 보낸 적 없다 주장했고
인근 아파트 관리인들 역시 모른다 말하자 경찰은 낯선 남자를 유력 용의자로 지명합니다.
‘루이’는 낯선 남자가 25세에서 30세 정도의 나이에 꿀색 머리를 했고
짙은 색 재킷과 짙은 [녹색 바지]를 입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범인을 특정하기란 매우 어려웠고
그렇게 1964년 1월까지 ‘보스턴의 교살범’은 13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유력한 용의자 중 ‘알버트 드살보’라는 남성이 있었습니다. 범행이 시작되기 2년전
‘보스턴’ 옆의 ‘케임브리지’ 지역에서 이상한 성범죄 신고가 여러 개 들어옵니다.
신고자들은 하나같이 낯선 남자가 자신들의 몸 치수를 재고 달아났다 밝혔습니다.
“이게 무슨말이지?”라고 다들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의 범행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선 낯선 남자는 아파트 문을 두드려 젊은 여성이 대답하면 “내 이름은 존슨이고
모델 에이전시에서 일해, 너는 좋은 모델이 될 것 같아 스카우트하러 왔어.”라 말합니다.
이에 혹한 여성들이 그를 집으로 들여보내면 그는 수영복 모델을 찾고 있었는데
당신이 적합하다며 맞춤 수영복을 위해 치수를 재고 연락을 주겠다 한 뒤 달아난 겁니다.
경찰은 [녹색 바지]를 자주 입던 그를 ‘그린맨’ 혹은 ‘측량남’이라 불렀고 2개월 뒤
‘그린맨’은 동일 방식으로 범행을 저지르다 붙잡혔습니다.
‘그린맨’의 이름은 ‘알버트 드살보’로 그는 예전에도 강도짓을 하다 체포되며
여러 번 감옥을 들락거린 남성이었습니다.
그저 잡범으로 생각되던 그가 ‘보스턴의 교살범’일지 모른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1964년 10월 27일에 일어난 한 사건때문이었습니다.
그날 ‘알버트’는 자신을 경찰이라 소개하며 홀로 사는 여성의 집에 침입했고
성폭행을 한 뒤 갑자기 “미안해요”라고 말하며 도망갔습니다.
몇 시간 뒤 ‘알버트’는 주차 문제로 누군가와 시비가 붙었는데
그는 미래의 경찰 서장인 ‘리처드’였고 결국 이상 행동을 보이던 ‘알버트’를 ‘리처드’는 체포합니다.
물론 처음에 ‘알버트’를 어느 누구도 ‘보스턴의 교살범’과 연관 짓지 않았습니다.
그가 수감 생활을 하며 동료 수감자에게 자신을 ‘보스턴의 교살범’이라 소개하기 전까지는요.
‘알버트’가 허황된 거짓말을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속적으로 소문이 돌자 경찰은 ‘알버트’를 심문합니다.
여러 심문 과정에서 ‘알버트’가 몇 가지 불일치 하는 부분도 있었으나 공식 발표하지 않은
사건의 세부 내용을 서술하자 경찰은 그를 ‘보스턴의 교살범’이라 생각합니다.
‘알버트’의 지지자들은 그가 그런 범행을 저지를 인물이 아니며 물적 증거 하나 없이
정신병 진단을 받은 적 있는 그를 몰아세워 거짓 자백을 유도했다 주장합니다.
그들의 말처럼 물적 증거는 없었으나 자신의 범행을 인정한 ‘알버트’에게
배심원은 유죄를 선고 했고 1967년에 판사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 합니다.
1973년 11월에 ‘알버트’는 교도소 병원에서 자상을 입고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지만
누구의 범행인지는 밝혀지지 못한 상태로 수사는 종료됩니다.
2013년 7월 11일, ‘보스턴’ 경찰 당국은 ‘보스턴의 교살범’ DNA를 통해
‘알버트’가 진범인지 확인하려는 절차를 거칩니다.
우선 ‘알버트’의 조카에게서 채취한 Y-DNA가 비교됐고 ‘일치에 가깝다’라는 결과를 얻자
법원에 요청해 ‘알버트’의 신체 발굴을 허락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8일 뒤인 7월 19일, 경찰 당국은 ‘알버트’의 DNA가 ‘보스턴의 교살범’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51년만에 정확한 물적 증거가 나온 겁니다.
물론 몇몇 이들은 경찰 당국이 밝힌 ‘보스턴의 교살범’ DNA가 마지막 피해자의 집에서
발견된 것이기에 ‘알버트’가 다른 범행은 저지르지 않았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말처럼 ‘보스턴의 교살범’ 피해자라 알려진 13명 중 마지막 피해자만
‘알버트’가 살해했을 가능성은 있긴 합니다. 낮은 가능성이지만요.
‘알버트’의 지지자들은 여전히 그가 ‘보스턴의 교살범’이 아니라 주장하지만 그가 범인이라는
DNA증거와 그의 자백을 뒤집을 만한 반박 증거는 현재까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1960년대 ‘보스턴’일대를 공포에 떨게 한 ‘보스턴의 교살범’은
여러 대중 매체에 소개되며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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