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26. 18:13ㆍ범죄자 이야기
1970년 2월 17일, 새벽 3시 40분경. 911센터로 걸려온 한통의 전화. 신고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찌르려고 한다‘는 말과 함께 집 주소를 말한 뒤 전화를 끊습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집안은 매우 어두웠으며 정문은 잠겨있었고 집 내부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집을 살펴 보던 경찰은 뒷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계하며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닫혀 있던 방문을 열었을 때 그들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맙니다.
한 여성과 아이가 침대 바닥에 싸늘한 주검이 된 상태로 누워있었던 겁니다. 침대에는 ‘돼지’라는 단어가 피로 쓰여 있었고 그 옆에는 한 남성이 쓰러져 있었는데 그는 신고를 했던 집주인 ‘제프리 R 맥도날드’였습니다.
‘제프리’의 경우 숨이 붙어있었기에 경찰은 곧바로 의료진을 불렀고 다른 방에서 싸늘한 주검 상태의 두 번째 아이를 발견합니다.
4명으로 구성된 ‘제프리’일가는 아내 ‘콜렛’과 5살의 ‘킴벌리’, 그리고 2살의 ‘크리스틴’이 사망하면서 ‘제프리’ 홀로 남게 됩니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콜렛’이 임신한 상태였다는 겁니다.
‘제프리’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가벼운 뇌진탕과 타박상, 작은 자상, 21군데 가량의 깊지 않은 송곳으로 찌른듯한 상처만 있었기에 그는 일주일만에 퇴원합니다.
범인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경찰은 ‘제프리’에게 자초지종을 듣게 됩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저녁 ‘제프리’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안방 침실에서 ‘콜렛’, ‘크리스틴’과 함께 잠을 청했으나 ‘크리스틴’이 ‘제프리’의 옆구리에 오줌을 싸게 되면서 그는 기저귀를 갈아 주고 거실로 나와 잠에 들었다고 합니다.
얼마 후 그는 ‘콜렛’과 ‘킴벌리’의 비명 소리에 깼고 집에 침입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남성 3명과 여성 1명으로 이뤄 진 침입자들은 곧바로 ‘제프리’를 공격했습니다.
‘제프리’는 침입자를 흑인 남성 한명과 백인 남성 두명, 백인 여성 한명이라 주장했고 그중 백인 여성이 “Acid is groovy, kill the pigs”라고 외쳤다 합니다.
그렇게 침입자들에게 둘러 쌓여 ‘제프리’는 몽둥이와 얼음 송곳으로 공격 당했고 그는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침실로 통하는 복도 끝 거실에서 의식을 잃었다는 게 그의 진술 내용입니다.
우선 내용을 더 설명하기 전에 위에서 언급했던 “Acid is groovy, kill the pigs”에 대해서 잠시 집고 넘어가려 합니다.
사건 발생 1년전에 미국에서는 광신도 히피 집단이 약을 복용하고 끔찍한 범죄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맨슨 패밀리’라 불리며 약에 취해 어느 집에 침입해 사람들을 죽인 후 벽에다 ‘돼지’, ‘전쟁’과 같은 글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위에서 말한 ‘Acid’의 경우 기본적으로 산(酸)을 의미하지만 ‘LSD’의 속어로도 사용되며 이것은 ‘맨슨 패밀리’가 복용했던 강력한 환각제입니다.
“Acid is groovy, kill the pigs”란 결국 ‘LSD 개쩔어, 돼지들을 죽이자!“라고 해석됩니다. 이런 내용만 보면 ’제프리‘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이 ’맨슨 패밀리‘의 사건과 유사해보입니다.
제 3자가 보기에는 ‘맨슨 패밀리’같은 히피 집단이 약에 취해 ‘제프리’의 집에 들어와 아내와 아이들을 살해 했다고 생각되게 하는 진술입니다.
하지만 수사 당국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제프리’를 범인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증언이 거짓됐다고 생각한 것이죠.
우선 그들은 ‘제프리’가 처음 침입자와 맞닥뜨린 거실을 주목합니다. 거실에서 그는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고 주장했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거실에 있던 작은 책상이 뒤집혀 있었고 꽃이 꺾여 있었지만 몸싸움을 벌였다기보다는 누군가 몸싸움이 있었다고 생각되게 끔 인위적으로 조작해 놓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거친 몸싸움을 벌였다면 거실에는 ‘제프리’의 잠옷에 있던 섬유가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거실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크리스틴’과 ‘콜렛’이 있던 방에서 섬유가 더 많이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틴’의 손톱 밑에서도 그의 잠옷 섬유가 발견됩니다.
수사 당국이 그를 의심하는 가운데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침실과 뒤뜰에서 발견됐고 흉기는 모두 ‘제프리’의 집에 있던 물건들로 밝혀집니다.
수사를 맡은 CID(U.S. Army Criminal Investigation Division Command Seal)는 ‘제프리’가 ‘맨슨 패밀리’사건을 이용해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려 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웁니다.
‘콜렛’과 다툼을 한 ‘제프리’가 얼떨결에 그녀를 죽였고 이를 목격한 아이마저 죽인 후 히피 집단의 범행처럼 꾸미고 신고를 했다는 것이 CID의 생각이었습니다.
1970년 4월 6일, 미군 장교였던 ‘제프리’는 미군 조사관들에 의해 심문 받았고 한달 후인 5월 1일, 미군은 공식적으로 그를 가족 살해 혐의로 기소합니다.
‘제 32 조 청문회’에 소집된 그는 2개월간의 심사 끝에 그가 주장했던 침입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남성을 목격했다는 목격자가 나타나면서 소집 해제됩니다.
(제 32 조 청문회는 민법상의 예비 청문회와 유사한 미군 사법 규정에 따른 소송입니다.)
1970년 12월에 ‘제프리’는 명예 제대를 하면서 그의 혐의는 그렇게 종결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해 12월 15일, 그가 한 토크쇼에 출연하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는 토크쇼에서 가벼운 농담을 하며 CID가 자신을 유력 용의자로 초점을 맞추고 수사한 것에 불만을 털어놨습니다. 이를 지켜본 그의 의붓아버지 ‘프레디 카사브’가 그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프레디’는 미군에게 ‘제프리’의 심문 당시 심리 기록 사본을 요청했고 이를 읽어본 그는 무언가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이 기록에서 ‘제프리’는 침입자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는 진술 내용이 적혀있었으나 ‘프레디’는 그가 금방 의식을 회복했고 상처도 크게 남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 겁니다.
1971년 3월, 군 수사관들과 함께 ‘프레디’는 사건 현장을 방문합니다. 몇 시간의 조사 끝에 ‘프레디’는 사건의 범인이 ‘제프리’라 확신했고 그를 기소하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제 32 조 청문회’에서 소집 해제됐던 그였기에 이제는 법무부를 통한 기소만이 유일했습니다. ‘프레디’는 그를 기소하기 위해 시민들의 표를 모았고 4년이 지나서야 기소에 성공합니다.
‘제프리’는 기소에 대해 10만 달러(2020년 시점으로 대략 2억 6천만원)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후 기소 취하를 요청하며 시간을 끌었지만 4년이 지난 1979년 7월 16일, 결국 그의 재판이 시작됩니다.
검찰은 그날 ‘제프리’가 입고 있던 잠옷과 똑같은 종류의 옷을 준비해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 상황을 재연했습니다.
당시 ‘제프리’가 설명한 침입자의 공격은 얼음 송곳으로 그를 마구잡이로 찌른 것입니다. 검찰은 그의 주장처럼 재연을 해보았으나 옷에 남는 흔적은 매우 달랐습니다.
‘제프리’의 잠옷은 얼음 송곳의 모양이 정확히 남아있는 반면 재연에 사용된 잠옷은 여기저기 찢겨 언뜻 보기엔 칼로 공격한 모양을 띄고 있었던 겁니다.
검찰은 잠옷을 벗고 얼음 송곳으로 찌른 형태여야 이런 정확한 모양이 나온다며 ‘제프리’가 일가족을 살해한 후 있지도 않는 침입자를 만들어 냈다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옷에 난 송곳 자국은 총 42군데이지만 그의 몸에 난 송곳 자국은 21군데로 이는 너무 많이 차이가 납니다. 검찰은 ‘제프리’가 옷이 겹쳐진 상태에서 송곳 자국을 냈기에 그런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과거가 없었기에 살인에 대한 동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앞선 검찰의 주장과 ‘제프리’의 모순된 증언 때문에 재판은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갑니다.
결국 1979년 8월 29일, 배심원단의 투표 결과 ‘제프리’는 1급 살인 1건과 2급 살인 2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으며 종신형을 선고 받습니다. 그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습니다.
1980년 7월 29일, ‘제 4순회 항소 법원‘은 9년간의 재판 지연이 수정 헌법 6조에 속하는 신속한 재판권을 위반 했다는 이유로 ‘제프리’는 다시 한번 보석금 10만달러를 내고 풀려납니다.
하지만 1982년 3월 31일, 재판부는 그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았다며 다시 그를 연방 교도소로 데려옵니다.
1991년엔 가석방 신청 기회가 생겼으나 ‘제프리’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가석방 신청을 거부했고 지속적인 항소를 합니다.
2005년 ‘제프리’는 두 번째 부인과 변호사들의 권유로 가석방 청문회에 응했으나 그의 가석방은 거부됩니다. 그의 다음 가석방 심사 기회는 2020년 5월에 돌아옵니다.
그는 진짜 일가족을 살해한 괴물일까요? 아니면 그의 주장처럼 4명의 침입자가 벌인 범행일까요?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그는 오늘날까지 감옥에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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