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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 무전유죄. 탈옥범들의 외침

2019. 7. 3. 17:15미스터리 &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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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저번에 요청해주신 목록중에 '지강헌'이 딱 눈에 들어오길래 골라봤습니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상본과 캡쳐본은 동일 내용을 담고 있으니 편하신걸로 감상해주시고

 

캡쳐본으로 보실분들은 '홀리데이'를 들으시면서 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1988년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어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88올림픽을 말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행사인 올림픽은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릴  있는  기회였고 단순 스포츠 행사를 뛰어 넘어 문화, 경제적으로 발전을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10 2, 올림픽은 성공리에 끝났고 아직 여운이 잠긴 10 8, 누구에겐 사소하다   있지만 누구에겐  울림을 가져온 사건이 일어난다.

 

다른 교도소로 이송되던 범죄자 25명중 12명이 교도관을 찌르고 총을 빼앗은  호송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도주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이들은 대부분 잡범으로 당시 보호감호제도 때문에 징역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보호감호처분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자신은 겨우 500만원 절도로 징역 7년형에 보호 감호 10년을 선고 받았는데 ‘전경환‘(전두환 동생) 73억을 횡령하고도 2년만에 풀려났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탈주  것이다.

(당시 500만원도 결코 적은 돈은 아니긴 하다)

 

경찰은 이에 주요 길목과 탈주자들의 연고지에 3700여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그들을 잡기 위한 수사력을  동원하였다.

 

12명중 7명은 곧바로 자수하거나 검거되었으나 나머지 5명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이 탈출하고 나서 7 뒤인 10 15, 저녁에 서대문구 고모씨의 집에 4명의 탈주범이 나타난다.

 

그들은 경찰의 검문을 피해 여러 곳을 전전하다 고씨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고 운좋게 탈출한 고씨가 파출소에 신고하면서 그들은 남아있던 고씨의 가족을 인질로 잡는다.

 

4명은 지강헌, 안광술, 강영일, 한의철로 새벽 4 40분부터 경찰과 대치를 시작하였고 어느덧 집을 둘러 싸고 있는 경찰은 천여명에 달하였다.

 

인질극을 벌이기 시작한 그들은 두려워 하는 인질들에게 죄송하다며 절대로 다치지 않게  터이니 걱정말라고 달래었다고 한다.

 

처음에 그들은 인질 4  2명을 풀어준  집앞에 봉고차  대와 ‘비지스 ’홀리데이 듣고 싶다며 테이프를 가져다 달라고 하였다.

 

당시 총을 들고 있던 ‘지강헌 사회에 불만을 토하며 술을 마신 상태로 유리창을 깨는  위협을 하였고 그의 가족들은 총을 버리고 자수를 권하였지만

 

 

 총은 누구도 빼앗을  없는  마지막 재산이라며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12시경에 ‘강영일 인질 1명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 다시 한번 봉고차를 요구한다.

 

다시 집안으로 돌아가려는 ‘강영일에게 ‘지강헌 권총을 땅에 발사하며 자수를 하라고 말하였고 이를 보며 자수를 애원하는 그의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이 자기 뜻대로   없지만 마지막은  뜻대로 살겠습니다.”

 

그는 재차 ‘홀리데이 ‘나자레스 ‘Please Don’t Judas me’ 테이프를 요구하였고 밖에 나가있던 ‘강영일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는 사이에 집안에 남은 범인 3명이 몸싸움을 벌인다.

 

지강헌 총을 빼앗은 ‘안광술 ‘한의철 총으로 자살을 선택하였고 혼자 남은 ‘지강헌역시 경찰이 건내  ‘홀리데이 들으며 유리조각으로 자살을 기도한다.

 

지강헌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오후 4 55, 숨을 거두었고 인질극을 벌이던 4명중 ‘강영일만이 살아남아 체포되며 비극의 막을 내렸다.

 

인질극을 벌일 당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안광술

 

어떻게 죄수가 판사, 검사를 돈으로  수가 있는 거야?”

사람을 죽이고서 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지강헌

 

내가 받은 판결은 정치적 요구에 의해 내린 잘못된 판결입니다.”

낭만적인 바람막이 하나 없이  사회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에는….”

너무나 살아갈 곳이 없었다….”

 

홀로 남아 체포된 ‘강영일 탈주와 인질극으로 인한 재판을 받았는데 당시 마지막까지 인질로 잡혀있던 고모씨의 딸은 정상 참작을 부탁하는 탄원서를 제출하였다고 한다.

 

상기인은 1988 10 15 탄원인 OO 집에 들어와 다음날인 16 오후 12시까지 인질극을 벌였습니다.

비록 그가 인질범이며 탈주범이기는 하나 저희 집에 들어와 우리를 인질로 잡고 있으면서도 

 

그리고 탄원인의 아버지가 신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에게  한번의 폭언이나 폭행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분명 심성이 착한이였음을   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불안에 떠는 저희를 진정시키며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정말로 미안하다는 말을 수시로 했습니다.

물론 그가 지은 죄는 사회적으로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아 마땅하나 저희 집에 들어와 취한 인간적인 면을 생각하여 정상 참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영일 동생에게 전해달라며  편지에 언급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어구가  사건 전체를 대표하는 표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