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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 그 의문의 죽음

2019. 7. 1. 13:16미스터리 &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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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에도 요청해주신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에 관하여 가져왔습니다.

 

요청은 해주신 순서대로 하고있습니다.

 

항상 부족하고 허접하지만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려요

 

영상본과 캡쳐본은 동일 내용을 담고있으니 편하신걸로 감상해주세요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1987 8 29 경기도 용인군에 있는 ‘오대양공에품 공장에서 발생한 집단 자살 사건이다.

 

오대양 대표 ‘박순자 비롯해 그녀의  아들은 물론 종업원   32명이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고 당시 이는  이슈가 되었다.

 

박순자 사이비 종교의 교주였고 그들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시에 많은 사람이 자살하자 3차례에 걸쳐 재수사까지 이루어졌다.

 

그들은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발견되었고 교주인 ‘박순자 종말론을 내세우고 다녔기에 경찰은 그들이 결국 집단 자살을 하였다고 결론 내었다.

 

박순자 예전에 자신이 병으로 심하게 앓았지만 신이 내려와 자신을 치료하여 회복되었다고 주장하며 신학교를 다녔다.

 

그러던  ‘여호와의 증인 들어갔고 후에 ‘구원파 신도가 되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자신을 따르는 신도를 데리고 나와 ‘오대양이라는 종교를 설립한다.

 

그녀는 자신이 오대양을 지배할 사람이고  나아가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는 뜻에서 ‘오대양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사이비 종교가 돈을 벌기 위해선 신도가 필요하고 그들은 신도를 충당하기 위해 임대 사업을 벌였다.

 

임대 사업은 대부분 유치원, 고아원, 양로원등을 목표로 했고 아이들과 어르신들을 세뇌하여 자신의 신도로 끌어들였다.

 

그들은 매월 한차례 신도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해하게   자신들의 규율을 어긴자는 집단 구타를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신도들을 확보하고 돈을 벌어가던 ‘박순자 1984년에 ‘오대양이라는 공예품 제조 회사를 만들어서 사업을 하기 시작하였다.

 

1986년에는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일본의  회사에 합작을 하여 7억원을 투자하였으나 사기를 당해 사업은 실패하였다.

 

이에 ‘박순자 신도들에게 사채를 써서라도 돈을 모아 오라고 시켰고 신도들은 사채까지 써가며 ‘박순자에게 돈을 받치게 된다.

 

그렇게 모은 돈이 무려 111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신도들이 돈을 갚지 않자 채무자들이 그들을 찾아와 협박을 하였으나 이미 종교에 눈먼 신도들에겐 전혀 효과가 없었다.

사채 89, 사업 매출금 17, 은행 대출금 5(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오대양 사채내역 보고서 )

 

그들의 이런 행위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7 8 15, ‘박순자에게 7억원을 빌려주었던 부부가 그녀를 찾아와 돈을 갚으라고 하면서이다.

 

박순자 신도들을 시켜 부부를 구타하였고 돈을 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풀려난 부부는 경찰에 신고를 한다.

 

8 24, 경찰에 자진 출두한 그녀는 기자들이 몰려들자 갑자기 기절하여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녀의 남편은 충남도청 고위직 공무원이었고 이를 믿고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에 화를 내며 병원으로 몰려들기까지 하였다.

 

병원으로 이송된 ‘박순자 그곳을 탈출하였고 신도들에게 용인공장으로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오대양 공장에 50여명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그들은 아이들을 제외하고 공장 천장에 숨어들어 음식과 이불을 올려달라는 부탁을 하였고 8 29, 천장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의문스러운  죽음은 집단 자살로 보였고 경찰도 사건을 수사하며 자살로 생각하였다. 수상한 쪽지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 삼우는 무척 고통 받고 있습니다.“

반대다. 완전 도전이다. 넘기면 개발비 불게 하는 거다

 

쪽지의 내용  삼우는 ‘유병언’(구원파) 이끌었던 ‘삼우트레이딩 의미하였고 개발비는 사채를 뜻하였다.

 

유병언 삼우트레이딩에 개발실(사채사무실) 운영하여 ‘오대양교인들이 이곳에서 사채를 끌어  것으로 1991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구원파 사건에 개입 되었으리라 의심한 사람들은 그녀가 ‘구원파에서 나온 것은 ‘오대양 차리고 ‘구원파에서 거액의 사채를 끌어들여 ‘구원파 자금을 불리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결국  쪽지로 인해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비밀 은폐를 위한 타살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하였지만 ‘박순자 돈이 ‘구원파 흘러간 흔적은 찾지 못하였고

 

검찰은 ‘사채 반환  극단으로 몰린 이들이 집단적으로 자살한 사건으로 타살은 근거가 없다라고 밝히면서 결국 집단 자살 사건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언론에 ‘박순자 포함 29명은 교살의 흔적이 있었고 그녀의  아들과 공장장은 스스로 목을  죽었다고 발표되었지만 그들의 죽음이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결국 알아내지 못하였다.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을  같던 ‘유병언 모든 것을 부인하였고, 2014, 세월호 사건으로 도피  시체로 발견되어 영원히 침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