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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이야기] 사람들은 그를 에레심의 몬스터라 불렀다

2020. 12. 18. 18:40범죄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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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해드릴 나쁜 사람은 제가 찾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기록이 삭제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사진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미리 양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939년 6월 21일, 브라질 세치라고아스에서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난 루이즈 바우.

약초에 해박했고 민간 요법도 두루 섭렵한 루이즈는 부모의 사망 후 동생과 재산 다툼을 벌였고
동생의 몸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뒤 샤페코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1967년 10월 7일, 지역 농장의 딸과 결혼한 루이즈는 평범하게 살아가나 싶었지만
아내와 사이가 나빠지며 결국 이혼을 했고 1974년 인근에 있는 히우그란지두술로 이주합니다.

체력이 좋고 여러 민간 요법을 잘 알고 있던 그는
그곳에서 17명의 자식을 홀로 키우고 있는 마리아 자르펠론의 집에 얹혀 살게 됩니다. 

마리아는 여러 지식을 갖고 있어 일상 생활에 도움을 주는 루이즈가 필요했고
루이즈는 자신이 머무를 곳이 필요했기에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였습니다.

루이즈는 마리아의 아이들 중 유독 프란시스코와 친밀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천식을 앓고 있던 프란시스코는 루이즈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하지만 친밀함을 넘어 둘이 아침 일찍 외출해 해질녘에 되어 돌아오는 날이 반복되자
가족들은 둘의 관계를 의심했습니다.

장남이 군대에서 돌아왔을 때 둘의 관계가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를 전달 받은 그는
맹렬하게 둘을 비난했습니다. 남자와 남자 사이에 그래서는 안된다며 말이죠. 

결국 가족들은 프란시스코를 가톨릭교회 신학교로 보내자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1975년 2월 26일, 프란시스코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말을 타고 방앗간으로 향했고
마리아는 루이즈에게 프란시스코를 신학교로 보낸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루이즈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그동안 벌었던 돈의 일부를
프란시스코를 위해 남기고 싶다 말하며 다른 곳으로 떠나겠다 전한 뒤 사라졌습니다.

여기까지는 모두 좋게 끝이 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심부름을 갔던 프란시스코가 해가 져도 돌아오지 않으며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갑니다.

루이즈는 떠난다며 사라진 상태에 심부름을 보냈던 자신의 아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마리아를 비롯해 가족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음 날 가족들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프란시스코를 찾았고 식료품점 주인으로부터
어제 루이즈와 프란시스코가 함께 어딘가 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둘이 함께 도주를 했나?“라는 생각에 허탈해하며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프란시스코가 타고 갔던 말과 안장에 묻어 있는 혈흔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걸 깨닫고 경찰에 신고해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인근 예배당 정원에서 사망해 있는 프란시스코가 발견됩니다.

그는 곡식 자루에 넣어져 있었는데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각했다 합니다.

인근을 배회하던 루이즈는 곧 체포 됩니다. 그는 자신을 배신한 프란시스코를
벌할 목적으로 살해 후 예배당 근처에 두었다 자백했다 합니다. 

법의학 정신 연구소로 이송된 그는 그곳에서 정신분열증 환자라 진단 받았고
1979년 6월 28일에 징역 4년 7개월을 선고 받습니다.(?)

에레심 주립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시작한 그는 교도관의 말을 잘 듣고
별다른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모범수였다고 합니다.

감옥에선 모범수의 경우 좀 더 자유로움을 보장해 주었고
그것은 가끔 나가는 사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출소일이 얼마 남지 않는 모범수는 인근에 있는 아에로포르토 농장에 사역을 나가곤 했는데
루이즈 역시 그러한 사역을 나가는 인물들 중 하나였습니다. 

1980년 1월 20일, 사역을 하던 루이즈가 사라진 날입니다. 탈옥이었습니다.

탈옥 후 그가 한 행동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소년들을 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란시스코때와 마찬가지의 흔적을 소년들의 몸에 남기며 그는 인근 일대를 돌아다녔습니다.

2월 15일까지 한 달 동안 3명을 살해한 그는 4번째 범행 시도 중
소년의 아버지에게 들키며 도주했습니다.

그가 도주한 장소는 아에로프르토 농장. 수감 생활 당시 사역을 했던 장소였죠.
그곳에서 그는 농장 주인을 살해한 후 물건들을 훔쳐 달아납니다. 

에레심의 주민들은 그를 ‘에레심의 몬스터’라 부르며 두려워 했고
그의 주된 범행 대상이었던 소년들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군대까지 동원되며 루이즈의 수색이 강화됐고 2월 21일, 결국 그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발각되며 추적 끝에 다시 체포됩니다.

루이즈가 체포된 후 주민들은 그가 감금되어 있는 곳에 몰려들어
“살 자격이 없다!.” “우린 린치를 원한다”며 소란을 피웠다고 합니다. 
 
루이즈는 다시 한번 법의학 정신 연구소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삼엄한 감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5개월 뒤인 1980년 7월 1일, 그는 4명의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탈옥에 성공합니다.
목격자들의 말로는 안뜰의 자물쇠가 갑자기 터지며 문이 열렸고 그들이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는 예정 대로라면 1984년 3월 26일에 재판을 받았어야 했는데 그 사이
두 번째 탈옥에 성공하며 법원은 그가 없는 상태로 재판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1985년 4월 3일에 그의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2005년 4월 4일에 공소시효가 끝나며
그는 수배자 명단에서 제외됩니다. 정부는 희생자 가족에게 3,900달러를 지급했습니다.  

탈옥했던 다른 4명의 수감자들은 곧 잡혔으나 루이즈는 끝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가 탈옥했다는 소식에 인근 학교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범죄의 심각성 때문에 정부 비밀 요원들에게 암살됐다는 소문과
다른 나라로 도망을 쳤을 거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만약 지금도 살아 있다면 올해 81살이 되었을 루이즈.
암살되어 삶을 마감했을지 아니면 평생 도주자의 삶을 살았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도달한 마지막 장소가 지옥이라는 것은 확실할 것입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